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니체 (문단 편집) === 몸철학[* 후대의 편의상 쓰는 강학상 용어이고, 니체 본인이 몸철학이란 용어를 쓴 적은 없다.] === 니체 사상에서 가장 앞선 전제는 몸(body)이다.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플라톤]]을 비롯한 서양 철학자들의 주장을 검토하면서 한가지 사실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철학자 또한 몸을 가졌다는 점이다. 니체는 인간의 생각은 몸(뇌신경계)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몸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19세기의 생화학적 지식과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전적으로 영향 받은 것이다. 니체가 몸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대 서양철학에서 지루하게 이어져오던 이원론, 즉 정신 vs 물질 논쟁 때문이다. 서양의 이원론에서 세상은 [[정신]]과 [[물질]]로 이뤄져 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현상이 있고, 이를 지배하는 안보이는 정신(자연법칙)이 있다. 그리고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라서 인간의 [[영혼]]은 정신이고, 몸은 물질이다. 서양인들은 자연에 정신이 인간의 영혼처럼 실존하며, 물질보다 앞서고 물질보다 우월하다고 굳게 믿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이데아는 이후로 '진리'라고 불리며 서양인들의 머릿속을 2,000년간 지배했다. 그런데 서양철학은 근대에 접어들며 정신(자연법칙)이 물질적 현상(데이터)를 일반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품기 시작한다. 자연히 인간의 영혼 또한 뇌신경계의 전기화학작용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다만, 몸이 영혼보다 앞선다는 것은 기독교 가치관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저항이 심했다. 게다가 큰 난점도 하나 있었는데, 하찮은 포유류의 몸에서 어떻게 과학, 철학, 예술, 종교 같이 고등한 것이 나오는지 설명이 안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니체는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욕망이 철학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쳤을지에 관해서 서술한다. 즉, 철학자는 마치 그가 세상의 모든 물질로부터 동떨어진 순수한 정신으로 사유하는 듯 떠들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에 깔려있는 자신의 몸에서 비롯된 욕망에 기초해서 철학을 해왔을 거라는 "가설"[* 니체는 자신의 사유를 자주 이렇게 부른다]을 제시한다. 성욕, 소유욕, 지배욕, 명예욕 같은 몸의 욕망이 사유를 무의식 속에서 조종한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은 만물은 변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전통을 따르는 철학자들과, 불변한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전통을 따르는 철학자들로 양분이 가능하다. 그런데 니체는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철학자들이 크게 두 분류로 나뉘는 근본 이유가 사람들이 >1. 변화를 좋아하고 순간에 몰입하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 (=충동의 [[정동 #철학 용어|정서]]) > >2. 변화에 불안을 느끼고 확실한 것에서 느끼는 안정감 (=질서의 [[정동 #철학 용어|정서]]) 이라는 두 가지 몸의 욕망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두 욕망 중 어느 것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지에 따라서 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철학과 파르메니데스적인 철학으로 끌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전개하면, 너와 나의 몸이 다르면 욕망, 가치관, 진리도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남성과 여성은 뇌신경계가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는 부모와 자식, 젊은이와 늙은이, 건강한 자와 병자, [[적도]] 출신과 [[극지방]] 출신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이 시각에서 보면 같은 사람이더라도 늙거나, 병들거나, 건강해지거나, 기후가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그 사람의 정신은 바뀐다. 심지어 니체는 이와 같은 이유로 8만 년 산 인간의 정신은 매우 달라질 것이며, 인간과 모기(곤충인 그 모기다) 또한 서로 다른 철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서양철학의 흐름은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뒤집는 것이었다. [* 대표적으로 [[칼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이 그렇다.] 니체가 [[형이상학]]자라는 것도 이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니체]] 본인은 스스로를 [[생리학]]자 또는 [[심리학자]]라고 부르며 현대인이 보기에 엉뚱한 부심을 부렸다. 그 이유는 자신이 [[물질]]을 중심으로 사유하면서 기존의 [[정신]] 우위의 [[형이상학]] 전통을 전복시켰다는 자부심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 다만 서양 인문학에서 그들의 등장은 [[뉴턴]]에서 [[아인슈타인]] 넘어가는 정도의 충격이었기 때문에 그 자부심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그런 뻘소리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들의 사유는 엄연히 서양의 형이상학 전통의 일부이고, 형이상학의 역사적 맥락 없이는 이해될 수가 없다. 한편, 니체의 이러한 몸의 욕망과 그 철학을 연결짓는 생각은 이후 [[칼 융]]에 의해서 적극 수용되어서, 아예 인간의 각 호르몬 별로 각기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철학이 있을 거라는 상상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쓰여진 것이 『심리유형론』이다. 다만 융이 활동한 1910년대에도 호르몬이 직접 발견되지는 않았고, 그 성질에 대해서도 어림짐작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